인사말

물소리 새소리 밟다보면
어느새 번뇌 잠재우는 염불소리

산은 같더라도 봄과 가을이 다르고 여름과 겨울이 또 다르다. 철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같은 계절이라도 시시각각 모습이 변한다. 지난달 진달래가 활짝 피었던 산에는 요즘 철쭉이 화려하게 수를 놓는다. 그래서 산은 언제든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가보다. 울산 대운산은 해마다 이맘때면 연분홍과 진분홍색 철쭉이 뒤섞여 화려한 모습을 연출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운산(大雲山·742.7m)은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에서 양산시 웅상읍 명곡리와 삼호리에 걸쳐 있다. 그래서 산행도 대부분 온양읍 운화리 상대마을의 대운산 제3공영주차장이나 양산시 용당동 대운산자연휴양림 또는 양산시 서창동 명곡소류지를 거쳐 오른다. 용당내광로(路)를 따라가다 온양읍 내광마을에서 오르는 산길은 또 다른 감흥을 준다.

울주향토사료관에서 내광마을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절터곡길로 빠지는 길이 보인다. 용당내광로에서 남창천을 건너면 불당곡들과 장토골을 지난다. 국도변에 보타사(寶陀寺), 대운산펜션, 대운산계곡펜션 입간판이 줄지어 서 있다.

온양 내광마을서 절터곡길 빠져
불당곡들·장토골 지나면 산문 보여

묘각화 스님이 일으켰던 행자암
수안 스님 조언으로 보타사 개명

행자 스님이 남긴 자수작품 봉안

아스팔트 포장을 벗어나니 작은 논길이 언덕의 연속이다. 시멘트로 포장하기 전에는 좁디좁은 논둑길이었을 것 같다. 물기가 넘쳐 논길을 적셔 미끄럽고 물기가 넘쳐나기도 한다. 저만치 작은 개울에는 고둥도 숨어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소나무 숲길을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온갖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솔 향에 묻혀 흐른다.

소(沼)와 폭포가 이어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계곡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소도 무명 소요, 폭포도 무명 폭포다. 구불구불 산길 옆으로 나타날 비경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잘 치장한 펜션이 줄지어 객에게 손짓한다. 이 계곡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산길의 집채만 한 바윗돌을 부수는 굴착기의 굉음이 숲속의 적막까지 깼다. 길옆 보명사를 지나 왼쪽으로 가팔라지는 경사로가 보타사 가는 길이다.

이한열 시인은 ‘행자암 가는 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콸콸콸
덤불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 밟는다
한번이라도
가슴에 산 개울물 흘렀던 이와
걸었으면 좋을 오솔길 섶으로
물소리
새소리
염불소리가 발걸음 재운다
비우지 못하는
수천마리 들끓는 탐(貪)을 재운다
산문(山門)을 드나드는
어진 이들의 합장으로 피웠을
우듬지 천장에 눈이 부시도록
번뇌만큼이나 하얀 꽃등을 단
때죽나무 꽃잎 하염없이 진다
이 환한 무념(無念)의 꽃길 속으로
업(業)을 사하러 온 속인이
차마 백화(百花)의 무상을 즈려밟지 못하고 비켜간다
세월로 부터 돌아누운
이끼 낀 바위에 앉아
산이 되고 물이 되는 사이
소(沼) 속을 들여다보니
넝쿨처럼 엉켰던 번민 사라진다
아무리 공복을 느껴도
절밥에는 수저를 들지 않는데
마음이 닿는지 공양이 달디달다
시(詩)의 행간에서
길을 찾으려는 나그네에게
암자를 맡기고
비구승은 재너머 마실로
불연(佛緣)을 이으러 나선다
밤새 선(禪)으로 빚은 자비(慈悲)
사랑에 넣어 메고
총총총
꽃그늘 속으로 멀어진다

2015년 4월12일 세계적인 선화 작가 통도사 수안(殊眼) 스님이 울산 대운산 보타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절에서 열린 사찰음식과 함께하는 힐링 작은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앞서 2013년 10월27일 보타사 앞마당에서 열린 풍경음악회 및 사찰음식 시음회에도 수안 스님이 참석했다. 수안 스님과 인경(仁鏡) 스님과의 불연은 끈끈하다.

대운산 보타사는 원래 행자암이라는 작은 암자였다. 행자암을 인수받은 인경 스님이 수안 스님에게 절구경을 시켜주자 행자암에서 보타사로 바꾸고, 법명도 보타(寶陀)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인경 스님은 2008년 보타사로 중건하면서 법명을 자제보타로 소개한다.

보타사에는 또 오르간 연주 및 음성공연으로 이름을 알린 진성(眞成)스님이 머물고 있다. 대운산 철쭉제에서 해마다 메들리 공연을 해 일반인에게도 낯익은 노래하는 스님이다.

▲ 묘각화 스님이 자수를 놓아 이룬 문수보살상.

보타사가 행자암으로 있을 때는 삼성각 입구 바위(무애암)에서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코끼리바위’라고 불리는 바위는 삼성각과 더불어 기도발이 잘 받아 소원을 비는 불자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보타사에는 행자암을 일으킨 묘각화 스님의 행적이 숨어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대운산에는 무명암(無名庵) 토굴이 있었다. 목재로 지은 건물과 별채 화장실, 그늘막이 쳐져 있었고 맑은 물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수조가 전부였다. 어느 사찰 출신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젊은 스님이 토굴을 지어 수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님의 법명이나 사찰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아 무명(無名)스님으로 불렸다. 이 스님은 어떻게 이 깊은 대운산 골짝으로 들어왔을까. 인적이 드물고 길도 없는 이 산중에 어떻게 왔을까.

대운산 행자암은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용산 미8군에서 타이피스트를 했던 미모의 행자 스님이 세웠다. 속세에 대한 미련 때문에 행자를 법명으로 정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말을 많이 더듬었던 것으로 전해진 행자 스님은 1958년 대운산에 들어와 온갖 풍상을 겪고 1996년에 입적했다. 평생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아 이룬 아미타상, 관음보살상,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 등 자수 보살작품들을 남겨 지금도 보타사에서 6점을 볼 수가 있다.

동리사람들은 행자 스님이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가다 무작정 남창역에 내렸고, 1959년 9월 태풍 사라호 때 폭우로 토굴이 무너지자 무작정 부처님을 모시고 대운산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또 자수를 아랫마을인 삼광리 처녀들에게 가르치면서 차츰 자리를 잡아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홀로 산중에 살면서 꿈을 꾸고 꿈속 세상과 늘 대화를 했던 행자 스님의 행적은 지금 보타사 입구 부도와 비문에 남아있다.

보타사는 절에서 먹는 음식을 짓는 공양주(供養主)가 없는 사찰이다. 아미타불을 모시기 때문에 대웅전 없이 무량수전과 삼성각 2채가 종교시설의 전부다.